영턱스클럽 임성은, 필리핀 마사지숍에서 포착
2000평 스파 운영하는 CEO 근황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최근 유튜브 채널 ‘특종세상-그때 그 사람’을 통해 공개된 근황 영상에서 임성은은 현지 직원들과 함께 스파를 관리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연예계를 떠난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영턱스클럽이 남긴 강렬한 추억 때문이다.
사진=MBN
임성은이 처음 보라카이를 찾은 이유는 휴식이었다. 영턱스클럽 탈퇴 후 솔로 활동까지 마친 그는 연예계 생활에 지쳐 있었다. 잠시 쉬었다 돌아갈 생각으로 찾은 보라카이는 예상치 못하게 그의 인생을 바꿨다.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작한 해외 생활이었지만 그는 현지에 정착했고, 현재는 보라카이의 대표 럭셔리 스파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포세이돈 스파(Poseidon Spa)’를 운영하는 CEO가 됐다.
약 2000평 규모의 포세이돈 스파는 일반 마사지숍과 달리 독채 빌라 형태의 프라이빗 공간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전용 수영장과 꽃잎 자쿠지, 스파 시설이 마련돼 있어 신혼여행객과 커플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 요금은 프로그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인 기준 약 10만~15만원대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지에서는 고급 스파로 분류된다. 왕복 픽업 서비스와 프라이빗 시설 이용이 포함돼 일반 마사지숍보다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여행 플랫폼과 후기 사이트에서도 시설과 서비스 만족도가 높은 편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MBN
임성은의 인생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영턱스클럽 탈퇴 배경으로 정산 문제를 꼽았다. 그는 스카우트 멤버였기 때문에 정산을 비교적 제대로 받았지만 다른 멤버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밝혔다.
당시 멤버들이 도움을 요청하자 그는 직접 기획사 측에 정산 문제를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임성은은 “정산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책상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후 각종 오해와 루머가 이어졌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됐다. 그는 “6~7개월 정도 버텼지만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숨도 안 쉬어질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솔로 가수로 재출발했지만 그룹 시절의 폭발적인 인기를 이어가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연예계 생활에 지친 그는 결국 새로운 삶을 찾아 한국을 떠났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 90년대 휩쓴 1세대 혼성 아이돌 영턱스클럽
지금의 MZ세대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영턱스클럽은 19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인기 그룹이었다.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 이주노가 제작한 혼성그룹으로 데뷔한 영턱스클럽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남녀 혼성 아이돌이었다.
대표곡 ‘정’은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못난이 컴플렉스’, ‘질투’, ‘타인’, ‘거짓말’, ‘슬픈 연인’ 등도 연이어 히트했다.
임성은은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며 “하루 스케줄이 18~19개씩 있었다”고 말했다. 이동 차량에서 잠을 자고, 씻을 시간조차 부족할 정도로 바쁜 일상이 이어졌다. 가는 곳마다 영턱스클럽 노래가 흘러나왔다는 그의 회상은 당시 인기를 짐작하게 한다.
사진=MBN, 온라인 커뮤니티
임성은의 인생은 무대 밖에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보라카이에서 만난 다이빙 강사와 결혼했지만 결국 이혼을 선택했다. 그는 전 남편이 2주 만에 1500만 원을 사용할 정도로 과소비가 심했다고 고백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혼이었다. 임성은은 “내가 한 선택 중 가장 잘한 선택이 이혼”이라며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계속했다면 내가 먼저 무너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는 가요계 정상에 올랐지만 정산 갈등과 탈퇴, 인기 하락, 사업 위기와 이혼까지 적지 않은 굴곡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정’을 부르며 90년대 청춘들의 추억을 책임졌던 스타는 이제 보라카이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사업을 운영하는 CEO가 됐다. 화려한 무대는 떠났지만, 인생 2막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모습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김은정 기자 kej@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