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기술 발전을 명목으로 개인정보보호는 뒷전? 국회 문턱 넘은 ‘자율주행차법 개정안’에 시민사회 강력 반발

내 얼굴, 이동경로 등 민감정보가 원본 그대로 수집될 수도 있다는 우려... 안전장치 부족 지적 속 논란 확산

자율주행 자동차 데이터 수집
자율주행 자동차 데이터 수집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를 앞당긴다는 명분 아래, 개인정보 보호에 큰 구멍을 낼 수 있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바로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다. 이 법안을 두고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자율주행차 임시운행허가를 받은 기업이 도로 주행 중 수집한 영상정보를 연구 개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문제는 이 영상에 찍힌 불특정 다수 시민의 얼굴, 행동, 이동경로 등 민감한 정보가 별도의 가명이나 익명 처리 없이 ‘원본’ 그대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의 없이 수집되는 내 얼굴 정보

참여연대 등 15개 시민사회단체는 공동성명을 통해 “민감정보 원본 활용을 가능하게 한 위헌적 입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길을 걷는 시민 입장에서 자신의 얼굴이나 위치 정보가 촬영되고 수집되는 사실조차 인지할 수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정보 주체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처리 정지나 삭제 요구 권리 행사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셈이다.
이는 개인정보보호의 대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며, 사실상 기술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국민의 기본권을 무력화하는 조치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자율주행 자동차 데이터 수집 카메라, 센서
자율주행 자동차 데이터 수집 카메라, 센서


유출되면 끝 사후 처벌은 미봉책

물론 개정안에는 목적 외 이용 금지, 안전성 확보 조치, 일정 기간 후 파기 의무 등 안전장치가 포함되어 있다. 위반 시 벌칙 조항도 마련됐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이러한 사후적 조치만으로는 개인정보 보호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과거 수많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 봤듯이, 일단 정보가 유출되면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과태료나 사후 처벌은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기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다. 기업이 개인정보보호법의 복잡한 절차를 우회해, 사실상 무상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자율주행 자동차 테스트
자율주행 자동차 테스트

사회적 합의 없는 일방적 통과

더 큰 문제는 이처럼 국민 다수의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나 공론화 과정 없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점이다. 자율주행 기술 발전이라는 대의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정보 인권이 어떻게 보호될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했다.

시민단체들은 “특정 기술 개발과 기업 이익을 위해 국민 기본권을 보호장치 없이 내놓은 것”이라며 입법 과정 전반에 대한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번 법 개정으로 자율주행 기술 개발 환경은 한층 나아질 수 있겠지만, 개인정보 보호라는 중요한 가치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권리 위에 설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