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전기차에 밀리고 제네시스에 치이고…기함 세단의 쓸쓸한 입지
2018년 역대 최고 실적에서 월 최저 판매량까지, 불과 6년 만에 벌어진 일
한때 기아의 최고급 세단 자리를 지켰던 K9이 위태롭다. 지난달 판매량은 단 29대에 그쳤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79.7% 급감한 수치이자, K9 출시 이후 가장 낮은 월간 판매 기록이다.
단순한 판매 부진으로 보기 어려운 배경이 있다. 시장의 중심이 세단에서 SUV로 이동했고, 고급 세단 시장 내 경쟁 구도 역시 K9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기아 내부의 라인업 재편 방향성도 K9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한때 ‘가성비 플래그십’으로 불렸던 모델이 어쩌다 단종설의 중심에 서게 됐는지, 그 변화를 구체적인 수치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SUV가 대세가 되자 설 자리를 잃었다
상황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K9은 2세대 신차가 출시된 2018년 한 해에만 1만1,843대가 팔리며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연간 판매량은 1,581대까지 곤두박질쳤다. 과거에도 세대교체 직전 월 39대까지 판매량이 떨어졌지만, 당시엔 신차 효과로 곧바로 회복했다. 지금의 29대는 회복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가장 큰 원인은 시장의 구조적 변화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SUV 점유율은 2020년 43.3%로 세단(41.7%)을 처음 넘어선 뒤 최근 60%대까지 치솟았다. 반면 세단은 30%대로 주저앉았다. ‘큰 차를 사려면 SUV’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지금, K9 같은 대형 세단이 과거의 판매량을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제네시스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대형 세단 시장이 줄었다는 것만으로 K9의 부진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은 결정타였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G80과 G90이 시장 수요를 독식하면서 K9은 설 자리를 완전히 잃었다.
올해 K9의 누적 판매량은 791대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G80은 1만8,861대, G90은 3,087대가 팔렸다. K9보다 적게는 4배, 많게는 24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크기만 보면 G80과 G90 사이에 위치하지만, 브랜드 파워와 상품성에서 뚜렷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며 애매한 위치에 고립된 결과다.
기아의 미래 전략에 K9은 없었다
기아의 시선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기아는 니로부터 카니발까지 탄탄한 RV 라인업을 구축했으며, EV3부터 EV9까지 전기차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확장 중이다. 올해 기아의 전기차 판매량은 6만6,028대로 전년 동기 대비 39.6%나 늘었다.
판매가 급증하는 SUV와 전기차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상황에서 판매량이 급감한 대형 내연기관 세단에 대한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업계에서 연말 K9 단종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월 29대라는 숫자는 단순한 판매 실적을 넘어, 기아 승용 라인업에서 전통적인 대형 세단이 차지했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