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로 사람 이름 딴 기차역에서 시작하는 겨울 감성 여행
소설 ‘동백꽃’ 배경지에서 만나는 눈 쌓인 초가지붕의 낭만

사진=김주형. 눈 내리는 문학촌의 밤. 2021 춘천관광사진전
사진=김주형. 눈 내리는 문학촌의 밤. 2021 춘천관광사진전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 따뜻한 실내도 좋지만 때로는 고즈넉한 풍경 속을 거닐며 사색에 잠기고 싶을 때가 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춘천에 소설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간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소설가 김유정의 문학적 숨결이 깃든 김유정 문학촌이다.

사람 이름 딴 최초의 기차역 김유정역

이 문학 기행의 시작은 김유정역이다. 1939년 신남역으로 시작한 이곳은 2004년, 한국 철도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의 이름을 딴 역으로 재탄생했다. 춘천 출신 소설가 김유정과 그의 작품 배경이 된 실레마을을 기리기 위함이다. 2010년 경춘선 복선 전철 개통과 함께 새로 지어진 역사는 일반적인 기차역과 달리 고풍스러운 한옥 양식으로 지어져 방문객을 맞이한다.

새 역사 옆으로는 이제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옛 경춘선 철길과 낡은 역사 건물이 그대로 남아 아련한 향수를 자아낸다. 옛 역사를 지키는 역장 캐릭터 ‘나신남’ 동상과 무궁화호 열차를 개조해 만든 ‘유정북카페’는 이곳만의 독특한 볼거리다. 인근에는 김유정 레일바이크도 있어 문학적 감성과 함께 레저 활동도 즐길 수 있다.



사진=박상진. 김유정역 설경. 2016 춘천관광사진전
사진=박상진. 김유정역 설경. 2016 춘천관광사진전

소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김유정 문학촌

김유정역에서 도보로 멀지 않은 곳에 김유정 문학촌이 자리한다.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거장, 김유정의 삶과 문학 세계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작가가 태어난 생가를 중심으로 그의 유품과 원고 등을 볼 수 있는 기념전시관이 있다.

김유정은 고향인 실레마을의 풍경과 사람들을 소재로 ‘봄봄’, ‘동백꽃’ 등 해학 넘치고 향토색 짙은 작품을 남겼다. 문학촌은 그의 소설 속 배경을 현실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마을 곳곳에 조성된 ‘실레마을 이야기길’을 따라 걸으면 소설 속 장면들이 묘사된 실제 장소들을 마주하게 된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은 겨울 풍경

사진=권혁만. 문학마을의 향. 2017 춘천관광사진전
사진=권혁만. 문학마을의 향. 2017 춘천관광사진전




겨울의 김유정 문학촌은 그 매력이 절정에 달한다.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실레마을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면, 초가지붕의 생가와 정자는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과 소박한 전통 건축물들은 차분한 겨울 공기와 어우러져, 작가가 고뇌하며 거닐었을 그 시절로 방문객을 이끈다.

문학촌 탐방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실레마을 이야기길’ 겨울 산책이다. ‘동백꽃’의 점순이가 감자를 건네던 생강나무 울타리, ‘봄봄’의 데릴사위가 실랑이를 벌였을 법한 들판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핀 눈꽃과 차가운 바람 속에서 마주하는 소박한 돌담길은 번잡한 일상을 잊고 깊은 사색과 정서적 휴식을 안겨준다.

박서우 기자 swoo@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