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성공의 상징이었던 플래그십 세단의 쓸쓸한 퇴장
판매 부진 너머에는 더 거대한 시장 변화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K9 / 사진=Kia
기아의 최고급 세단 K9을 둘러싼 공기가 심상치 않다. 한때 성공한 기업인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플래그십 모델이 이제는 단종설의 중심에 섰다. 후속 모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부재하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다.
이러한 위기는 단순한 판매 부진을 넘어선다. 강력한 경쟁자 제네시스의 부상과 소비자들의 취향이 세단에서 SUV로 옮겨가는 시장 변화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K9의 입지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해외 자동차 전문 매체들마저 K9의 제품 수명이 거의 끝났다고 분석하는 상황. 기아의 세단 전략이 중대한 기로에 놓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K9 / 사진=Kia
제네시스 그늘 아래서 빛을 잃었다
K9의 부진은 판매량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해 국내 시장 판매량은 1,581대에 그쳤고, 올해 상반기 실적은 734대에 불과하다. 플래그십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성적표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이 꼽힌다. G80과 G90이 각각 대중적인 프리미엄 세단과 쇼퍼드리븐 수요를 완벽하게 흡수하면서 K9이 설 자리가 애매해졌다.
여기에 하이브리드 모델의 부재도 뼈아픈 실책으로 작용했다. 높은 유지비와 연비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K9을 외면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K9 / 사진=Kia
시장의 무게중심이 세단 밖으로 이동했다
자동차 시장의 흐름 자체가 대형 세단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과거 의전 차량의 대명사는 고급 세단이었지만, 이제 그 자리는 대형 SUV와 미니밴이 차지했다. 넓은 실내 공간과 압도적인 활용성이 새로운 기준이 된 것이다.
실제로 팰리세이드, 카니발 하이리무진, GV80 같은 모델들이 법인 의전용과 패밀리카 수요를 동시에 충족시키며 시장의 주류로 떠올랐다. 과거라면 당연히 K9 같은 대형 세단을 고려했을 소비자층마저 이제는 더 실용적인 대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전기차 시대, K9에 돌아갈 자원은 없다
기아의 미래 전략 역시 K9의 존속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현재 기아는 모든 연구개발 역량을 전기차(EV)와 목적기반 모빌리티(PBV)에 쏟아붓고 있다. 한정된 자원을 미래 성장 동력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이러한 전동화 전환 국면에서 판매량이 저조한 내연기관 대형 세단에 막대한 개발비를 투자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시장성과 수익성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이 내려진다면, K9은 라인업 정리의 첫 번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K9의 단종설은 단순히 한 모델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국내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의 중심이 세단에서 SUV와 전기차로 완전히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K9의 향후 거취는 국내 대형 세단 시장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전망이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