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LG·SK가 앞다퉈 뛰어든 ‘도시 광산’의 비밀. 전기차 오너라면 주목해야 할 이유.

유럽의 강력한 규제가 국내 기업들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SK온 로고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SK온 로고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2017년에서 2019년 사이 도로에 등장한 1세대 전기차들의 배터리 교체 시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주행거리가 짧아지고 충전 속도가 더뎌진 이 배터리들은 과연 단순한 산업 폐기물로 사라질까? 시장 전문가들은 정반대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버려지는 배터리가 67조 원 규모의 거대한 시장을 여는 ‘황금 열쇠’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기차 폐배터리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은 크게 세 가지 근거에서 찾을 수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시장 가치, ‘블랙매스’로 불리는 핵심 기술, 그리고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 구도가 바로 그것이다.

쓰레기 아닌 ‘도시 광산’, 67조 시장 열린다



블랙매스 / 사진=KMC글로벌 홈페이지
블랙매스 / 사진=KMC글로벌 홈페이지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는 2030년 67조 원, 2040년에는 307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배터리의 평균 수명이 7~10년인 점을 감안하면, 보급이 본격화된 2017년 이후 차량들이 올해를 기점으로 대거 폐배터리를 쏟아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는 더 이상 단순한 예측이 아니다.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411만 대의 전기차가 폐차 수순을 밟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발생하는 폐배터리 양만 해도 338GWh에 달한다. 단순한 쓰레기가 아닌 리튬, 니켈,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을 품은 ‘도시 광산’의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재활용의 핵심, 검은 가루 ‘블랙매스’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의 중심에는 ‘블랙매스(Black Mass)’가 있다. 수명을 다한 배터리를 수거해 분쇄하면 나오는 검은색 가루가 바로 블랙매스다. 여기에는 배터리 양극재의 핵심 소재인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이 고농도로 함유되어 있다.

이 블랙매스를 정제해 금속을 추출하면 다시 새로운 배터리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원광에서 직접 광물을 채굴하는 것보다 비용을 최대 50%까지 절감하고, 탄소 배출량은 70% 이상 줄이는 효과를 낳는다. 경제성과 친환경,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기술이다.

총성 없는 전쟁, 시장 선점 나선 국내 기업들



국내 기업들도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글로비스가 폐배터리를 회수하고 현대모비스가 이를 재제조하는 그룹 차원의 순환 경제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배터리 3사의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중국, 유럽에 재활용 거점을 마련하고 2026년까지 재활용률 95%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SK온은 성일하이텍과 손잡고 2025년 상업공장 가동을 준비 중이며, 삼성SDI 역시 성일하이텍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94%를 재활용하는 성과를 냈다.

규제가 만든 기회, EU ‘배터리 여권’의 의미



글로벌 환경 규제 강화는 국내 기업들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특히 유럽연합(EU)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EU는 2027년부터 배터리의 원자재 정보, 탄소 배출량 등을 기록한 ‘배터리 여권’ 도입을 의무화한다.

나아가 2031년부터는 배터리 제작에 재활용 원료 사용(리튬 6%, 니켈 6%, 코발트 16% 등)을 강제할 방침이다. 이는 체계적인 재활용 시스템을 갖춘 기업만이 유럽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들이 재활용 밸류체인 구축에 사활을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당장의 수익성 확보는 과제다. 최근 리튬 등 핵심 광물 가격이 하락하고 전기차 수요가 주춤하면서 재활용 기업들의 실적에 부담이 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폐배터리 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정해진 미래다. 기술력과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시장의 승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