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 68년 만의 첫 연간 적자 위기, 북미 EV 모델 3종 개발 전면 중단 선언

전기차 투자 30% 감축, 하이브리드 13종 출시로 위기 돌파 모색

아큐라 RSX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아큐라 RSX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온 듯했지만, 시장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일본 자동차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혼다가 창사 68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적자를 기록할 위기에 처했다. 야심 차게 추진하던 전기차 전략이 오히려 23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혼다가 68년 흑자 신화를 뒤로하고 고개를 숙인 이유, 전면 중단된 전기차 모델, 그리고 위기 돌파를 위해 꺼내 든 의외의 카드는 무엇일까.

68년 흑자 신화의 균열



1957년 도쿄 증시 상장 이후 단 한 번도 연간 적자를 낸 적 없던 혼다의 아성이 무너지고 있다. 혼다는 최근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순손익 전망을 기존 3,000억 엔(약 2.7조 원) 흑자에서 최대 6,900억 엔(약 6.3조 원) 적자로 대폭 수정했다. 불과 몇 달 만에 1조 엔(약 9조 원)에 가까운 이익이 증발한 셈이다.

혼다0살룬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혼다0살룬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업계에서는 이번 손실을 시작으로 향후 추가 손실까지 더하면 그 규모가 최대 2조 5,000억 엔, 우리 돈으로 약 23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미베 도시히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급여 일부를 자진 반납하며 위기 극복 의지를 보였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야심 찼던 전기차 계획 왜 멈췄나



천문학적인 적자의 핵심 원인은 성급했던 전기차 전략 수정에 있다. 혼다는 북미 시장을 겨냥해 개발 중이던 순수 전기차 3종의 개발 및 생산 계획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기대를 모았던 ‘혼다 0 SUV’와 ‘혼다 0 살룬’, 그리고 고급 브랜드 아큐라의 ‘아큐라 RSX’ 전기차 모델이 포함된다.

혼다0SUV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혼다0SUV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들 모델 개발을 위해 투입된 막대한 설비와 자산을 한순간에 손상 처리하면서 재무제표에 막대한 부담이 발생했다. 미베 도시히로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전기차 시장 환경의 변화를 고려할 때 기존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하며 사실상 전략 실패를 인정했다.

유턴 다시 하이브리드로



전기차에서 한 발 물러선 혼다의 선택은 ‘하이브리드’다. 전기차로의 완전 전환에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판단하고, 현재 소비자들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하는 하이브리드 시장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혼다는 2027년부터 4년간 전 세계 시장에 무려 13종의 차세대 하이브리드 신차를 쏟아낼 계획이다. 2030년까지 연간 하이브리드 판매량을 220만~230만 대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동시에 기존 10조 엔 규모였던 전동화 투자액도 7조 엔으로 30%가량 줄여 속도 조절에 나섰다.

혼다만의 고민 아닌 글로벌 동향



혼다의 이러한 전략 수정은 비단 혼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전기차 시장은 높은 가격, 충전 인프라 부족, 보조금 축소 등의 문제로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내연기관 규제가 완화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시장의 주도권을 쥔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무서운 가격 경쟁력으로 시장을 위협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토요타, 닛산 등 다른 일본 완성차 업체들도 전기차 전략을 재검토하며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강화하는 등 비슷한 압박을 받고 있다. 물론 혼다는 2040년까지 판매 차량을 모두 전기차와 수소차로 전환하겠다는 장기적인 목표는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숨을 고르며 현실적인 대안인 하이브리드에 집중하며 다음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