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전설적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가 페라리의 첫 순수 전기차를 맡았다.
공개된 ‘루체’의 파격적인 모습에 슈퍼카 팬들의 오랜 기다림이 찬사와 논란으로 뒤바뀌고 있다.
페라리가 브랜드 역사상 가장 큰 변화의 갈림길에 섰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첫 순수 전기차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번 신차는 단순한 전동화 모델 그 이상을 의미한다. 페라리의 미래 방향성을 결정할 핵심 인물로 애플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가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았다.
이탈리아의 뜨거운 심장과 실리콘밸리의 차가운 이성이 만난 결과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4도어’ 구조와 조니 아이브 특유의 ‘디자인’ 철학이 페라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페라리의 심장이 아닌 아이폰의 두뇌를 담았나
전통적인 페라리 팬이라면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어로 ‘빛’을 의미하는 ‘루체(Luce)’는 기존 페라리가 고수해온 날카롭고 공격적인 슈퍼카의 문법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다. 가장 큰 파격은 4도어 5인승 구조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돼, 내연기관 슈퍼카와는 시작부터가 다르다.
전면부는 거대한 블랙 패널이 엔진의 부재를 알리고, 날렵한 헤드램프는 미래지향적인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닷지 차저 같다”, “중국 전기차 느낌이 난다”는 혹평도 나온다. 측면의 도어 핸들은 테슬라처럼 숨겨져 있고, 뒷문은 롤스로이스에서나 볼 수 있던 코치 도어 방식이다. 만약 당신이 수십 년간 페라리의 열렬한 팬이었다면, 이 낯선 디자인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버튼은 줄었지만 운전의 감성은 오히려 풍부해졌다
실내는 조니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그는 물리 버튼을 최소화하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도, 운전의 재미와 직결되는 부분은 과감히 남겨두는 영리함을 보였다. OLED 디스플레이와 클래식한 토글 스위치가 절묘하게 공존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티어링 휠과 함께 움직이는 계기판이다. 운전자의 시선 이동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다. 고릴라 글래스와 E Ink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 키, 심지어 폭발적인 가속을 위한 런치 모드 활성화 버튼은 전투기처럼 천장에 배치했다. 여기에 21개 스피커가 뿜어내는 3,000W 출력의 오디오 시스템은 웬만한 럭셔리 세단을 압도한다.
논란의 디자인, 하지만 성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디자인에 대한 갑론을박과 별개로 성능은 페라리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다. 4개의 전기모터가 합산 총출력 1,035마력을 뿜어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2.5초. 122kWh 용량의 배터리와 800V 초급속 충전 시스템을 갖춰 20분 만에 상당량의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물론 2,260kg에 달하는 육중한 무게는 약점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페라리 측은 차체 바닥에 깔린 배터리가 구현한 낮은 무게중심과 정교한 토크 벡터링 기술 덕분에 실제 체감은 훨씬 가볍고 민첩하다고 설명한다. 유럽 기준 예상 가격은 약 52만 유로, 한화로 8억 원을 훌쩍 넘길 전망이다. 북미 시장 출시는 2027년으로 예정되어 있다. 페라리의 전례 없는 도전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