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마력 넘는 성능에도 싸늘한 시장 반응, 논란의 중심에 선 ‘디자인’
포르쉐, 람보르기니와 다른 길 선택한 페라리, 과감한 전략은 통할까
사진 : 루체 / 페라리
페라리가 마침내 첫 순수 전기차의 베일을 벗었다. 수년간 기대를 모았던 프로젝트였지만, 공개 직후 시장의 반응은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페라리의 주가는 급락했고, 논란의 핵심은 디자인과 브랜드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모아진다. 페라리의 가장 과감한 도전은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아이폰 디자이너의 손길, 페라리답지 않다는 평가 왜 나왔나
이번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놀랍게도 페라리 내부가 아닌 외부 인물이 있었다. 바로 아이폰 디자인으로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준 조니 아이브(Jony Ive)와 그의 디자인 스튜디오 ‘러브프롬(LoveFrom)’이다. 혁신을 기대했던 세기의 협업이었지만, 결과는 혹평에 가까웠다.
사진 : 루체 / 페라리
공개된 전기차 ‘루체(Luce)’의 디자인을 두고 해외 커뮤니티와 SNS는 그야말로 벌집을 쑤신 듯했다. “테슬라 모델3와 혼다 어코드를 섞은 것 같다”, “이게 중국 전기차 디자인과 뭐가 다른가” 등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페라리 고유의 공격적인 에어로다이내믹 디자인과 관능적인 곡선 대신, 지나치게 매끈하게 다듬어진 차체는 오히려 낯설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만약 당신이 8억 원이 넘는 돈을 주고 페라리를 산다면, 어떤 모습을 기대하겠는가. 단순히 빠른 차가 아니라,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하는 특별한 무언가를 원했을 것이다. 많은 팬들과 투자자들이 바로 이 지점에서 브랜드의 핵심 유산이 사라졌다는 깊은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1000마력 넘는 성능에도 주가는 왜 하락했을까
사진 : 루체 / 페라리
차량의 성능 제원표만 놓고 본다면, 이번 혹평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루체는 4개의 강력한 전기모터를 각 바퀴에 탑재해 합산 출력 1,035마력이라는 경이로운 힘을 뿜어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2.5초 만에 도달하며, 최고 속도는 310km/h에 이른다. 심지어 페라리 역사상 최초의 5인승 모델이라는 실용성까지 더했다.
문제는 이 압도적인 숫자가 투자자들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디자인 공개 직후 페라리의 주가는 이탈리아 증시에서 8.4%, 미국 시장에서는 5% 이상 급락하며 하루 만에 막대한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모델에 대한 낯섦을 넘어, 브랜드의 핵심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시장의 명백한 경고 신호로 해석된다. 예상 시작 가격만 52만 유로(약 8억 원)에 달하는 차량에 대한 기대치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페라리가 잃어버린 것은 엔진 사운드뿐만이 아니었다
사진 : 루체 / 페라리
이번 사태를 단순히 디자인 실패라는 하나의 사건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최근 포르쉐, 람보르기니 등 경쟁 슈퍼카 브랜드들조차 예상보다 더딘 전기차 수요에 기존의 급진적인 전동화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시장 분위기 속에서 페라리는 가장 과감한 형태의 순수 전기차를 선보이는 모험을 감행한 셈이다.
베네데토 비냐 페라리 CEO는 “엔진 사운드보다 중요한 건 운전자가 느끼는 감정”이라며 새로운 시대의 페라리 경험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은 ‘페라리다운 감성’의 부재를 먼저 읽었다. 투자자들은 페라리가 내연기관의 상징성을 잃은 전기차 시대에서도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럭셔리 브랜드로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결국 루체의 최종 성공 여부는, 실제 차량이 선사할 주행 경험이 지금의 논란을 잠재우고 브랜드 가치를 다시 증명할 수 있느냐에 달리게 됐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