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두뇌’ ECU 공동 개발 착수, 단순 비용 절감 넘어선 생존 전략
2030년 공동 플랫폼 신차까지…일본 자동차 산업 재편 신호탄
한때 일본 자동차 산업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혼다와 닛산이 손을 잡는다. 과거 합병 논의까지 오갔던 두 회사의 협력 배경에는 혼다의 막대한 적자, 전기차 시대의 생존 경쟁, 그리고 차량의 ‘두뇌’로 불리는 ECU 공동 개발이라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단순한 기술 제휴를 넘어선 이들의 동맹은 일본 자동차 업계의 지각 변동을 예고한다.
차량의 두뇌 ECU부터 공유하는 이유
혼다와 닛산의 협력은 가장 핵심적인 부품에서 시작된다. 양사는 차량의 동력계와 안전장비,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등을 통합 제어하는 ECU(전자제어장치) 공동 개발 계약을 수 주 내 마무리할 예정이다.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이 직접 주주총회에서 “닛산과의 협력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밝히며 공식화했다.
이는 단순히 부품 하나를 공유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ECU는 모든 전장 시스템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이를 공유하면 향후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기술까지 공동 개발 범위를 넓히는 기반이 된다. 개발 비용 절감과 신차 출시 기간 단축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이번 협력에는 미쓰비시도 참여하며, 공동 개발된 ECU는 세 회사의 하이브리드 및 순수 전기차에 폭넓게 적용될 예정이다. 실제 양산 차량 적용은 2029년 또는 2030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혼다를 움직인 4239억 원 적자의 무게
혼다가 자존심을 접고 협력을 서두르는 배경에는 심각한 실적 악화가 있다. 혼다는 최근 회계연도에서 약 4,239억 엔(약 3조 7천억 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기록하며 위기에 직면했다. 이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의 부진과 막대한 R&D 투자 비용 증가가 맞물린 결과다.
특히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의 전환이 늦어지면서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이 “향후 3년 안에 급변하는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자동차 사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공언한 것도 이러한 위기감의 발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업계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혼다에게 닛산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된 셈이다.
르노라는 변수 속 동맹의 향방
ECU 공동 개발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차량 제어 시스템을 통합하면 플랫폼과 배터리 등 핵심 부품 공동 구매로 협력 범위를 확대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이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만 넘어야 할 산도 존재한다. 바로 닛산의 주요 주주인 르노의 존재다. 르노는 여전히 닛산 지분 15%를 보유하며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향후 혼다와 닛산의 협력이 자본 제휴와 같은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르노의 동의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이번 협력은 글로벌 전기차 경쟁에서 뒤처진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독자 생존의 한계를 인정하고, 연합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두 라이벌의 동맹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