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의전차 시장의 지각변동, 더는 ‘세단’만 고집하지 않는 까닭
이동 중 휴식과 업무, 잦은 승하차… ‘회장님의 하루’에 맞춰보니 답 나왔다
G90 후면 / 사진=제네시스
성공한 사람의 차, 이른바 ‘회장님 차’는 으레 검은색 대형 세단이었다. 제네시스 G90이나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가 대표적이다. 묵직한 외관이 주는 권위와 안락한 뒷좌석은 성공의 상징과도 같았다.
1986년 1세대 그랜저 가격이 1,700만 원대에 달했던 시절, 자동차 소유 자체가 부의 척도였다. 지금은 차량 이용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차종만으로 누군가의 지위를 짐작하기 어려워졌다.
최근 VIP 의전 시장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일부러 ‘밴’을 찾는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단순히 더 넓은 차를 선호하는 것을 넘어, 이 선택에는 격식보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달라진 가치관이 반영돼 있다.
G90 전면 / 사진=제네시스
세단이 가진 격식, 그러나 명확한 한계
쇼퍼드리븐 세단의 가치는 뒷좌석에 집중된다.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동안 소유자는 조용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한다. 정숙성과 부드러운 승차감, 브랜드가 주는 상징성은 대형 세단이 오랜 기간 VIP 차량으로 사랑받은 이유다.
하지만 이런 장점 이면에는 명확한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낮은 차체는 타고 내릴 때 몸을 숙여야 하는 불편함을 동반한다. 특히 여러 장소를 바쁘게 오가는 일정이라면 이 작은 동작이 피로로 쌓일 수 있다.
승객석과 완전히 분리된 트렁크 구조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편하게 이동하더라도 부피가 큰 짐을 함께 싣거나 실내 구성을 바꾸는 데는 제약이 따른다. 격식을 차리는 데는 최적이지만, 모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는 어렵다.
카니발 하이리무진 실내 2·3열 / 사진=기아
고급 밴이 제시하는 새로운 가치
반면 고급 미니밴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기아 카니발 하이리무진 같은 모델은 높은 지붕과 넓은 실내 공간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다. 핵심은 ‘공간의 여유’가 주는 압도적인 실용성이다.
머리 위 공간이 넉넉해 차 안에서 허리를 굽힐 필요가 없다. 슬라이딩 도어는 좁은 주차 공간에서도 편하게 타고 내릴 수 있게 돕는다. 필요에 따라 시트를 조절해 큰 짐을 싣거나, 다리를 완전히 뻗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G90 실내 2열 / 사진=제네시스
단순히 좌석을 푹신하게 만든 수준을 넘어선다. 이동 중 업무를 보고, 간단히 옷을 갈아입는 등 ‘움직이는 개인 공간’으로서의 역할 수행이 가능하다. 세단이 ‘편안한 휴식’에 초점을 맞췄다면, 고급 밴은 ‘효율적인 시간 활용’까지 고려한 셈이다.
성공의 상징이 달라지는 진짜 이유
고급 밴이 등장했다고 해서 대형 세단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조용한 후석에서 쉬고 격식 있는 자리에 도착하는 용도라면 세단의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카니발 하이리무진 측면 / 사진=기아
달라진 점은 성공한 이들의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사실이다. 이제 자동차는 단순히 부를 과시하는 수단을 넘어, 자신의 바쁜 일정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조하는 ‘도구’로서의 의미가 커졌다.
결국 뒷좌석에 앉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세단의 상징성인지, 밴의 공간과 실용성인지는 개인의 일정과 생활에 따라 달라진다. ‘회장님 차’의 모습이 다양해지는 것은, 성공의 기준과 삶의 방식이 획일적인 모습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




